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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단장)아가-4주님의 사랑이 나를 성장 시킨다

by GOTOKINGDOM 202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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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가 4:16


예수님이 소녀를 안아주시는 사진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나의 주님은 나에게 어여쁘고 어여쁘다 마음껏 칭찬과 위로를 하신다
내가 밤의 어두움을 이겼기 때문이었다 
4장에 모든 신랑의 대화는 신부에게 하시는 칭찬과 격려이다
신부가 3장에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 시험은 신부들의 각자에 따라 다르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밤의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실재 나의 삶에 있었던 것이지만 사실은 훨씬 오래전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두려움이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우리 안에 두려움은 죄를 범하고부터 들어온 것이다
아담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이 벗겨져서이다 
아담과 같은 죄를 우리가 짓지 않았어도 그 씨로부터 전 인류는 죄 아래 있다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가는 길은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8-19)

그래서 4장 전체는 주님이 신부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을
하나하나 쫓아 주시는 가르침과 배움에서 조금씩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지는 자신을 보며 영혼의 힘을 얻어 가는 것이다
아직도 너울에 가려졌지만 그 눈이 비둘기 같다는 것은 비둘기는 안구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눈동자를 움직이지 못한다 주위를 볼 때 목을 사용한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만 바라보는 비둘기 눈인 것이다 
그리고 머리털은 길르앗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머리털은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 머리털은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 삼손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은 까닭이 헌신된 자라고 한다

내 안에 염소 무리들을(주님의 양이 아닌 것들) 길르앗산기슭에 누워있다
길르앗은 초장이 매우 좋아 짐승을 키우기 윤택한 곳이다
그러나 성경에 길르앗은 싸움의 전쟁터가 되고 또 회복의 약속이 있는 곳이다
바로 내 안에 어두운 존재들(우상)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나라를 위한 나의 헌신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출 32:24, 29)

두려움은 내 안에 우상이다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대부분 두려움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아담을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마귀의 일이다 
내 안에 두려움을 잡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에서 발동한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민 25:11-13)

위 말씀은 바알브올 사건 이야기이다 (민 25장 전체 읽어보기를 추천)
하나님은 우상에게 미혹된 두령들을 목매어 달라하시고
형제들을 죽이라 명하시며 백성들에게 염병을 보내셨다
그러나 누가 두령들을 목매어 달며 형제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은 자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사람으로 할수 없는 나쁜 일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자는 그것들이 사람이 아닌 마귀의 짓임을 안다는 것이다
(주님 읽는 자의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보게 하소서....)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이는 입안에 들어가는 음식에 사용하는 부분이다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고 또 초에 찍어서 먹을수 있다
어린 아이나 노인은 초(식초)에 반응을 한다 (먹기 어려워한다)
초, 신 포도는 죄악을 상징하며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죄악을 다스릴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나 노인은 죄악를 이길 수 있는
지각이 없거나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 31:29-30) 
나의 주님이 십자가에 우슬초로 찍은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 하셨다(요 19:30)
나의 무거운 양털 같던 지짐이 다 벗겨졌다 할렐루야~

이가 목욕도 하고 털도 깎였다 함은 죄악을 입은 나의 겉사람을 벗었다는 것이고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다는 것은 술람미가 사랑하는 이의 몸을 표현하는데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하구나(아 5:14)
상아 = 이 = 셴 (같은 말이다)
술람미 여인의 이에 관하여 말씀하신 부분이 똑같이 두 곳에 나온다
4:2와 6:6에 같은 말씀인데 두 말씀은 때가 다르다(변화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4: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6:6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 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6장은 털 깎임이 없는 암양이다 이미 겉사람이 벗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장에 낳은 쌍태는 나의 죄의 씨를 유산해 낳은 것이다
그리고 6장은 예수님의 몸인 말씀의 떡을 먹고 낳은 거룩한 씨인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유월절 만찬에서 떡은 내 몸이라 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의 떡을 점점 깊이 묵상하여 먹으며 거룩한 씨를 낳는 것이다 
나의 주님은 항상 나에게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일용할 양식으로
말씀을 먹여 주셨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 주님은 나의 입술이 홍색 실 같고 입이 어여쁘다 하신다
홍색 실은 성막에 사용되었고 제사장의 겉옷에도 사용되었다
새 예루살렘 성전인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홍색 실 하나로는 완전하지 않다
(가늘게 꼰 베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연합되어야....)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완전하지 못하다
입=미드바르=다바르=말, 언어, 말씀을 뜻하는데 광야, 황무지, 메마름라는 뜻도 있다 
나의 입술이 진홍같이 붉은 주님의 피와 물로 덮어주시고 씻어 주시지 않으시면
언제나 내 입은 세상 말에 사로잡혀 또 더러워진다
그런 삶이 늘 메마름에 갈급함을 느끼면서 더욱 주님 임재를 구하게 된다
신부의 입은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입이어야 한다
이렇게 주님은 나를 주님께로 한 걸음씩 이끌고 계셨다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목은 순종함을 말하는데 다윗이 건축한 망대에 비유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다윗은 노략물을 
여호와께 드렸고 군기들도 그러했다 
그 전투에 방패 들고 싸운 용사들을 비유해서 충성된 용사들의 방패를
모두 달았다고 하니 얼마나 견고한 망대인가 
우상에게 절대 절하지 않고 꺾이우지 않는 충성심을 말한다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백합화는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싸우는 중인 신부이다
신부의 유방은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요 양육하기 위함이다 
주님으로부터 받아 가득히 채워진 유방에서는 아이를 양육하는 
신령한 젖이 된다 
신부가 먼저 젖을 가득 채워야 아이를 양육할 것이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노루 새끼는 술람미가 사랑하는 이를 가리켜하던 말과 동일하다
노루 새끼=어린 사슴=오페르 
신부는 점점 신랑이 투영되어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간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너무도 보잘것없고 부끄러운 나를 이렇게 극찬하시며 사랑하시니
급기야 그 사랑에 감동되어 나도 모르게 서원을 해 버린다
2장에 술람미는 예상치도 못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초대를 거절했었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분리)에서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요라(아가 2:17)
주님 없이 살 수 없고 주님 계신 곳에 가고 싶었다
늘 함께 하신다는데 나는 지극히 세미한 음성으로 임재를 느꼈고
그것이 나를 얼마나 갈급한 심령으로 만드는지 모른다
주님의 사랑의 임재로 함께 하는 시간은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주님 걸아가신 십자가의 길을 나도 지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님이 몰약 산에서 달리고 유향의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셨는데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 주님의 날에 저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는 어느새 성장한 것 같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발생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어린아이 같이 낮아진 마음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꼴을 먹이시는 주님이시다
원수 앞에서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전히 꼴을 먹을 수 있다
그것이 믿음의 방패 되신 주님 주시는 믿음이다

예수님이 방패를 들고 소녀를 지치는 사진


주님은 나를 이상하게 보며 이단에 빠졌다 생각하는 목자나 형제들을 통하여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것을 통하여 나의 내면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치셨고 도저히 듣지 못할 저급한 욕을 난무하는 목자의 영을 끝까지 듣게 하심으로 외형이 아닌 본질을 보게 하시는

인내와 분별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A) 자매 나의 동역자와 나눔을 함께 하며 형제를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함을 가르치셨고 나의 옳다 함을 내려놓고 형제 생각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나의 믿음의 학습 능력을 더 성장시키셨고 가속도가 붙었다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릴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드디어 나의 주님이 신부라고 부르신다 
레바논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는 훌륭한 목재들이 온 곳이다
헤르몬, 아마나, 스닐, 사자굴, 표범산에서 내려다보라는 것은
모두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레바논은 가장 근본의 자리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주님이 계신 보좌로 본다
신부는 신랑과 함께 보좌에 앉고 신랑과 함께 동행한다
아마나, 스닐, 헤르몬은 같은 산맥이며 시온산으로 불린다 
계 14장 어린양과 십사만 사천이 섰는 곳이다
그리고 사자 굴과 표범 산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주님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보는 법을 가르치셨다
아래에서 형제들과 같은 눈과 마음으로 힘써 싸우는 것도 귀한일이지만
주님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가는 것에 먼저 집중을 하게 하신다
아래에서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하여 늘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인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적진이 다 보인다 
그래서 주위 형제들과 생각이 다르다거나 나를 오해한다 해도
이제는 더 이상 변론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내려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지 다 보이니까
그래서 좀 더 참고 기다려 줄 수 있고 또 나도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서로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나의 누이라는 부르심은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새 생명 된 형제를 말한다
신부는 주님과 한 몸이 된 보좌로 부르심이다 
나의 누이가 결국은 보좌의 부르심의 신부로 완성되겠지만
현재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눈으로 한번 본다는 것은 주님의 눈과 일치하여 본다는 것이고
목의 구슬 한 뀌미는 주님의 이끄심과 일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4장에 주님이 술람미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은 모두 에덴동산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을 예수님이 다시 찾아 주시는 부분이다
모두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이 
이 세상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또 이 세상에서 이해되지 않던 일들도 영의 세계에서는 알게 된다 
그렇게 주님은 내가 빼앗겼던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 주셨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이제 주님의 누이, 신부는 두려울 것이 없다
흑암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 모든 일의 주관자는 나의 주님이시다 
때로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을까?
나는 왜 힘들어야 하나?
나만 왜 이런 고통이 있는 걸까?
그 답은 주님이 알고 계신다 
모든 답은 창세전에 이미 계획되었고 주님이 정하신 일이다
그 주권을 인정하면 먼지 같은 나를 왜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다

오늘 4장은 이것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왜냐하면 후반에 빠진 부분은 영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그리고 가장 힘들고 어두운 현실의 이야기다 
이 부분을 먼저 기록을 하면 내가 아가 묵상을 끝까지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마무리할 때 맺음으로 기록을 하려고 한다 

 

거친 길을 예수님보면 가는 여인 사진

 


세상에도 이런 말이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나는 사랑하는 주님을 영의 세계에서 만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 출입하는 것은 나의 혼에 아픔과 두려움을 주었다
평생 꿈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것이 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아픔과 두려움을 이기면서 내영은 점점 성장해 갔다......

 

 

 

 

 

주님이 계시니 그 사랑의 힘을 의지하여 
나는 오늘도 험함 길을 비록 더딜지라도 뒤돌아 보지 않고 갈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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