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그동안 미루어졌던 묵상을 다시 힘을 내어 시작해 본다
글을 올린다는 것은 부족한 나로서는 너무도 태산 같은 넘을 산과 같다
한번 가동을 멈추고 나면 다시 재동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내 안에 온갖 참소와 비방이 어떤때는 다 적어둔 글조차도 삭제를 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의와 교만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에 또하나의 죄성을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나의 나됨으로 할 수 없는 해산의 수고를 오직 성령님 의지하여 해산을 하고 나니
태산 같던 산이 한순간 평지가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할렐루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묵상을 나는 룻기를 선택하였다
룻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갈등 즉 내 안에 수많은 소리들과 싸워서
그 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잠잠히 만드는 신부이기 때문이다
룻이 싸움을 한 수많은 내면적 소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승리하였을까?
나도 룻의 심령을 살펴보며 살며시 신부의 길을 소망해 본다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룻1:1)
룻기는 그 시대가 사사시대라고 첫 절로 시작을 한다
그래서 그 땅이라고 함은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이 처음 가나안을 주셨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였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땅이었는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그럼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것이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중간 생략 성경을 찾아보시기를 강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신 8:11-20)
사사시대를 보면 끊임없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절하는
12지파들의 행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은 변함없이 징계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일을 반복하신다
지금 룻기가 그 시대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계신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의 일하심은 유다 베들레헴 사람을 조명하신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신 33:7)
모세의 마지막 축복의 말씀입니다
유다는 메시아의 오시는 길에 왕의 혈통으로 기록된 지파이다
그런데 성경기록에는 유다가 그 백성을 떠나는 것을 여러 번 기록한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이라에게 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창 38:1-2)
형제 요셉을 미디안 사람에게 팔기를 함께 동조했던 유다는 무슨 연유인지
형제들을 떠나 이방인과 동무가 되고 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인격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방받을 일을 허용하신다
바로 며느리 다말과의 동침에서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는 천륜을 범하는 것이다
룻기 4장에 보면 나와 있지만 베레스의 혈통으로 룻의 구원자 보아스가 태어났다
하나님의 일은 참으로 신묘막측하다
유대인이 그렇게도 싫어 개로 여기는 이방인과 또 아들들과 한 여인을 품게 되는 이런 일을
한마디로 개족보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혈통적 족보로 메시아를 보내셨다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은 왜 이런 일들을 행하시는 것일까?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노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롬 11:25-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1-32)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 30:1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죄인으로 보시지 않으시고 사랑과 긍휼의 대상으로 보신다
그 증표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우리의 죄가 중하든 경미하든 그 모든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모두 대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보내신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시려고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읽으면 읽을수록 참 깊이가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현재 교회 다니며 믿는 자라는 신자들이 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까?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것이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는 본인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려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참예하려고 한다
다시 룻기로 돌아가보자
성경은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엘리멜렉이라는 인물을 왜 등장시키셨을까?
먼저 원어 주석을 풀어보면
베들레헴-바이트(집) + 레헴(빵) = 빵집
에브랏-에프라트=파라 = 열매를 맺음
엘리멜렉-엘(하나님) + 멜레크(왕)=왕이신 하나님
유다 엘리멜렉은 왕의 혈통으로 오실 메시아의 예언 성취를 위해
베들레헴에서 우리의 빵과 포도주로 태어나실 예수님을 열매 맺기 위해
백성들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들이 부유할 때 나가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다고 한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룻1:21)
유다 땅을 떠난 것은 엘리멜렉과 두 아들과 나오미였는데 그 땅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것은 나오미와 그를 좇은 며느리였다
왜 그러셨을까?
이스라엘에서 여자는 계수에도 넣지 않고 더욱이 모압 여인이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 직전에 바알브올 사건이 있었다
바로 바알을 섬기는 모압 신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음행하고 바알에 절하게 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염병으로
24000명을 죽이셨다
하나님은 엘리멜렉이 그 땅에 흉년이 들자 자기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고
자신의 풍족함만 가지고 떠나버린 자를 징벌하신 것이다
유다의 집안 엘리멜렉의 자손의 씨를 말려 버린 것이다
그렇게 두 과부만 비어서 돌아왔다
이들은 아무 의지 할 곳 없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원어로 찾아보자
나오미-나의 기쁨, 나의 기뻐하는 자
마라-마르(쓴, 괴로움)
마라는 광야에 3일 길에서 만난 쓴 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금은보화로 부하게 가지고 나왔지만
광야에서는 그 보화가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금은보화가 있어도 물이 없으면 죽게 된다
광야 3일 길에 겨우 만나 물이 바로 쓴 물이었다
그들은 원망 불평하였지만 그 물에 나뭇가지(십자가 상징)를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다
나오미가 기쁨이었지만 쓴맛, 괴로움이 된 것도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일을 하심일 것이다
두 며느리 중에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나오미를 붙쫓았다고 한다
붙쫓았다-다바크(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

오르바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도 시모를 떠나는 것이 기뻐서 돌아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룻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아마 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믿어진다
룻은 사사시대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지 않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받으신 것이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
만약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오르바일까 룻이까.....
이렇게 두 과부가 베들레헴에 보리 추수 시작할 때 돌아왔다
룻기 1장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