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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닌가요? 영적 중풍병자.....

by GOTOKINGDOM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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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3-5)

지붕에서 달아내리는 중풍병자 사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러나 가장 인간들에게 필요하였던 부분들은 고통에서 놓임 받는 것이 아닐까
병에서 악귀에게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라면 그 누구이든 따르게 될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것이 생명과 연결이 된 일이라면 누구나가 맹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온 것은 아니다 
마귀도 인간들의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병을 줄수도 있고 병을 치료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미혹한다
물질을 빼앗기도 하고 물질을 부어주며 하나님의 축복인양 유혹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권리를 마귀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귀와 원수가 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즉 죄 아래 살고 있다면 마귀의 종이다 
참 어려운 진리 부분인데 분명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 더니 )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희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6-18)

우리는 본래 죄의 종으로 살고 있었다 

교훈의 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죄에서는 자유한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의 종이라 하셨으니 우리를 순종케 하시는 법이나 
명령이 있다는 말씀이시다
삶에서 많은 일에 시험이나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건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여쭙고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살면 주님의 종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말씀에 기록된 대로 결단하고 죄아래 있지 않다면
주님의 종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때로는 아니 아쩜 항상이 될 수도 있겠다
마음의 생각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늘 이 말씀 앞에 넘어지게 된다 
이런 자를 영적으로 중풍병자라고 한다
사도 바울의 기록에 아주 잘 표현된 말씀이 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5-17)

죄의 종이 된 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곁으로 나오는 것이 

죄의 행함이라는 말씀이다  바로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임을 말한다
마음은 아닐지라도 죄를 이기지 못하면  죄의 주인의 뜻으로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이 악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지키며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율법의 의무이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7:12-13) 

율법은 우리를 죄인이라 알려주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결과로 받는 심판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알려주는 것이며 작은 죄 큰 죄가 있는 것이 아닌 모조리 심히 죽을 
죄인임을 알게 하려고 주신 선한 법인 것이다 
왜 그럼 나를 죽이는 법이 선한 법일까?
바로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줄 알아야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법 아래 들어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죄의 법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자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롬 8:3-4)
육의 생각을 좇아 육신의 유익을 위해 살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자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 영을 어떻게 좇는 것인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중풍병자는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수족이 마비된 사람을 말한다 

내가 어릴 때는 동네에 중풍병자가 많았다 
손발을 많이 떨면서 입도 돌아가고 그래서 혼자 밥도 먹지 못하였다 
묵상 본문의 말씀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중풍이 걸렸는데
그를 여러 사람이 데려왔고 고침 받으러 들어갈 수 없어 네 사람이 
집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 
이 말씀을 보며 처음 느낀 감동은 네 사람의 사랑이었다
중풍병자와는 어떤 관계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남의 집 지붕을 
훼손시켜 가며 누가 봐도 욕먹을 짓을 꺼림 없이 행한다 
이 사람을 고침 받게 하겠다는 그 의지와 사랑이 감동이 된다 


그럼 중풍병자는 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마비된 상태이다
이 상태를 성경 말씀으로 보면 사도 바울이 잘 기록을 해두었다
나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3-25

마음의 법과 육신의 법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중풍병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육신은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형제나 가족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 없다고 말씀은 기록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과 가족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또 다른 나는 형제가 미워진다기보다 귀찮을 때가 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주님께 집중하고 싶은데 엄마로서 아내로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귀찮고 힘겨울 때가 있다 
내가 세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함도 아니고 영적 성장을 위한 마음
또 주님의 일과 사역에 관한 여정이 필요할 때 여지없이 이들은 나의 발목을 
잡는 존재들이다 
어찌 보면 내가 넘어야 할 시험의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주님이 나에게 있었던 일들과 내면의 죄를 가르치시고 
내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신 것에 대해 묵상과 함께 나누어본다 

 

예수님께 걸어오는 베드로 사진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최근에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전도사 안수식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총교인이 50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 작은 교회에 3명이 안수 대상자였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이번에 세워진 종들은 우리 교인들이 뽑은 것이 아니다
마지막 때 전 세계 두 증인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원자들이다 
그래서인지 목사님이 우리 교인들에게는 언급하지 않으시고 강사 초청 집회와

함께 진행하셨다 
젊은 장년들이라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세워진 거 같아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교인들이 공고도 없이 진행되어서 많이 서운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말씀은 우리 교회에서 세운 일군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종들이라 하지만
그 행사 진행과 도우미는 모두 우리 교인들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서운한 마음을 들고 주님 앞에 엎드렸다 
주님의 종을 세우는 일인데 왜 나의 마음은 서운한 것일까
내가 늘 기도하고 원하던 것이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마지막 일군들이 
나오도록 주님의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했었는데
그들이 세워졌는데도 내 마음은 불편했던 것이다 
기도 자리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내가 그들을 시기하고 있는 것인가?
두 증인=순교자로 자원하는 그들을....... 

내가 왜?
이런..... 내 안에 죄의 법에 사로 잡힌 것이구나 ㅜㅜ
나는 주님 앞에 부르짖어 간구하였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의 법을 따라야 하는 내 안에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가는 것을 
보고 계시나이까.....ㅜㅜ


주님이 오셨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주님 임재 안에서는 신뢰가 가장 우선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나는 바로 베드로에게 3번 물으신 말씀을 떠 올렸다
여러 번 묵상을 했던 내용들이라 여러 모양으로 가르침을 받았었다
이 말씀을 하시며 요한복음 21:23을 묵상하라 하신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 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KRV)

이 말씀 때문에 그 제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제자들 사이에 퍼졌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해도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말씀하신 것뿐이었다(KLB)

그때 그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이 말씀이 형제들 사이에 퍼져 나갔더라.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설령 내가 
그를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라.(KJV)

23절의 말씀은 주님이 베드로의 숨은 내면을 드러내어 주시는 사랑의 끝판왕이다
혹시 다른 뜻이 있을까 하여 여러 버전으로 찾았다 
여태껏 주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3번 질문하심으로 
베드로의 양심을 건드리고 회개하게 하신 내용들에 집중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또 다른 감추어진 만나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1-12)

예수님은 양들의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베드로의 부르심의 사명이 바로 목자의 사명이었다
그러한데 베드로는 그 사명을 애써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란 물으심과 베드로의 사랑이란 답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서 할 것이니 계속 이어서 묵상을 해 본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아가파오)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아가파오)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아가파오)하라(요 13:34)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모두 아가파오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3번을 물으셨다
그럴 때마다 베드로는 사랑합니다라고 답을 드렸다
세 번째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왜 근심하였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질문의 단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성경에는 사랑이라고 같은 단어로만 기록이 되었지만 원어로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아가파오)과 베드로가 답은 한 사랑(필레오)이
다른 의미와 대상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예를 들면 좋아한다는 표현과 사랑한다는 표현의 의미가 틀리듯이
또 같은 이성끼리 우정 같은 사랑과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다른 것과 같다


예수님은 처음과 두 번째는 사랑이란 단어를 아가파오(생명을 주는 사랑관계)
물으셨고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일반적인 사랑관계)로 답을 했다
그런데 세 번째에는 예수님도 필레오로 물으셨고 베드로가 근심하였으나
역시 필레오로 답을 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2-14)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행하여 나의 친구가 되라는 말씀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 하셨고 또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셨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친구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목숨을 주는 사랑을 물었을 때

자신의 사랑은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 바로 주님이 묵상을 하라 하신 그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 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KRV)


그 제자는 죽지 않겠다고 하는 그 제자는 바로 요한을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바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신실하신 주님은 베드로의 왕이시요 주인 되신다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셨는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못하겠다고 하니 그럼 종의 신분으로 대우를 하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소유를 반드시 그 뜻대로 운행하신다(완성시키신다)
현재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도 그 뜻에 부합되지 않는 답을 했을지라도
주님의 양들을 맡기셨고 지금의 너의 답은 그럴지라도 너는 아가파오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사명을 알려주신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요 21:19)


베드로가 이 엄청난 사명을 받아 주님과 같이 죽음의 길로 오라 하심을 듣고

바로 들어온 생각이 형제와 자신을 비교하는 시기가 난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 살려주시고 나는 죽음의 길로 부르신다
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투덜거린 것이다 

정말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을 아가파오(목숨을 주는 사랑) 하지도  
형제를 아가파오(목숨을 주는 사랑)하지 못하는 새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 26:35)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곧 생명을 주는 사랑 아가파오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제자가 동일하게 고백을 하였지만 불과 몇 시간 뒤면 그들의 고백이
얼마나 무색한 것이었나 발가 벗겨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


그래서 주님이 알려 주신다

그를 머물게 하고 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말씀이요 

또 각자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의 가정에서 있었던 일들로 나는 주님의 일에 방해한다고
투덜거리며 교회 일 진행에 대해 불평하고 시기하면서도 
마치 주님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했었다 
내가 바로 마음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는 중풍병자였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들을 사랑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니
말씀과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주님 제가 바로 중풍병자였군요 ㅜㅜ

그래서 주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딤후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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